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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1997)>:아니 에르노 (정보, 줄거리, 후기,명대사)

호찌야 2024. 2. 6. 15:20

책 리뷰: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1997)>

책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판 표지

 

기본정보:

작가소개:

애니 에르노(Annie Ernaux)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년 자전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다룬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9년, 현대 프랑스의 변천을 조망한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리그램 독자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단순한 열정><부끄러움><사진의 용도>등이 있다. 이외에도 2011년, 자신이 태어나기 전 여섯 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쓴 편지 <다른 딸>을 선보였고, 같은 해 열두 편의 자전소설,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실은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다. 2003년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상이 제정되었다.

그녀는 주로 자서전적 요소와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유명하며. 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결합시켜 독특한 쓰기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소개: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 1997년에 출간된 책으로, 애니 에르노(Annie Ernaux) 작품 하나다.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치매가 악화되면서 그녀를 퐁투아즈 병원 노인 병리학과에 재입원시킨다. 어머니의 치매증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세상을 떠나시기까지 작가는 퐁투아즈 병원에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온 뒤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들과 모습을 해당 작품에 어김없이 담았다. 책의 제목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작가의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줄거리: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라는 폐부를 찌르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

어머니를 떠나보내기까지 병문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하루하루 써 내려간 책인 만큼, 책은 작가의 1983년 12월의 일기로 시작된다. 이때의 어머니는 자신이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다. 자신의 나이도 몰랐지만 자신에게 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때는 치매증세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쇼핑몰에 가서 바람 쐬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1984년 1월, 어머니는 대소변을 못 가리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혀주던 작가는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으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1984년 4월, 자신이 곧 퇴원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더 이상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제정신이 든 어머니는 “난 네가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 게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1984년 12월, 아직 앞날에 대한 계획과 욕구를 지닌 어머니는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작가 역시 어머니가 살아계시길 바란다.

1845년 4월, 어머니의 얼굴 생김새가 변했다. 두 입술은 보기 흉할 정도로 얄팍해져 있으며 벌어져 들떠있다. 어머니는 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1845년 9월,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준다. 어머니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면 나 역시 죽음으로 치닫는다. 어머니가 나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다.

1845년 12월, 어머니는 일층 로비에 있는 꽃장식을 가리키면서 “저건 아니의 원피스야”라고 말했다. 오로지 딸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846년 3월, 안면 마비증세로 병원에 올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보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머니의 휠체어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렸는데, 어머니 역시 몸을 숙이더니 작가의 머리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망각하며 지내던 사랑의 몸짓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1846년 4월 7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감상후기:

치매가 걸린 어머니가 읊조리는 말과 행동엔 그녀가 일생을 보내며 받아왔던 상처와 그 상처들이 만들어낸 강박관념이 얼핏 보인다. 많은 기억을 잃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일생의 전부가 응집되어 표현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지만 이 또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비움의 과정인 걸까? 공허한 눈동자를 하고 있지만 그녀가 힘겹게 내뱉는 말과 행동엔 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느껴진다. 모녀 둘은 사랑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다. 딸의 삶을 어머니는 기뻐하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바라보며 딸 또한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한다.

어머니의 나날이 쇄약 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고통의 뿌리를 끊어내고자 본인의 생각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했던 작가. 그렇기에 그녀의 자전적 소설은 거칠지만 따듯하다. 묵직하고 담담하면서도 그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고통, 불안, 슬픔은 독자들에게 짙게 다가온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육체는 사실 한 사람의 영혼을 담아 그 영혼의 온도와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물질적인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한계로 인해 피부에 닿을 수 있는 따듯한 온기는 우리 곁에 머물렀다 언젠가는 또 떠나가겠지만, 그 육체에 머물렀던 영혼만큼은 항상 어딘가에 남아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머물렀던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육체가 아니어도 영혼을 소토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나도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붙잡고 싶겠지만, 떠나가셔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겠지만, 세상이 야속하겠지만, 설령 부모님이 떠나가도, 태양이 더 이상 우리 부모님을 위해 비추지 않아도, 가슴속에 서로 나누어 담았던 영혼의 온도를 고이 간직할 수 있길 바라본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오늘 어머니는 내게 “너와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있으니 정말 좋은 것 같구나”한다. 어머니는 평소에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 습관이 반사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나는 목욕용 수건으로 어머니의 입을 닦아드렸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더니 “너 행복하니?”라고 물었다.

병실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물을 마시게 해 주었더니 “넌 복 많이 받을 거야”한다. 이 말은 내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죄책감도 버거운데 오히려 상을 받은 것이라니…….

 

내 인생의 처음과 끝, 즉 삶과 죽음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는 내가 가진 것이라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외엔 이제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몸을 숙이더니 내 머리를 껴안았다. 어머니의 이 몸짓, 바로 이 사랑을 나는 한동안 망각한 채 지내왔다. 이 사랑의 몸짓을 잃고서도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힌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 본래 모습의 어머니를 꿈에서 자주 뵌다. 어머니는 마음속엔 살아 있지만 실제론 죽었다. 나는 잠에서 깰 때마다 잠시 동안 어머니가 죽었으면서도 동시에 이중 형상으로 실제로 살아 있음을 확신한다. 마치 죽음의 강을 두 번 건넌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